이용규 고의4구의 나비효과

홈에서 kt에 위닝을 내주고 다음 상대는 어디인 게 제일 나을까? 한화 이글스가 그런 팀 고를 처지가 아니란 건 잘 알지만 그래도 굳이 고르자면 주중 3연전에서 출혈이 큰 팀이어야 할 것이다. 어차피 한화는 들이붓기 싸움을 걸어올 텐데, 같이 들이부을 여력이 가장 부족한 팀을 만나는 편이 그나마 제일 낫다고 할 수 있다. 많은 기사에서 언급되듯이 kt와의 3연전은 그저 루징이라는 결과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한화는 kt를 상대로 3일간 17명의 불펜투수를 투입했다. 이들은 총 260개의 공을 뿌렸다. 한화를 상대한 kt도 만만치 않았다. 13명의 불펜투수가 282구를 던졌다. 양팀은 총 1,016구의 공을 주고 받았다. kt는 그나마 장시환에게 몰려있었다지만 한화는 고르게 선수들이 연투했다. 여튼 이번 루징 시리즈는 한화에 커다란 내상을 입혔던 것이 분명하다. 승자인 kt 역시 다음 3연전에서 루징을 각오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 둘보다 더 많은 공이 오간 시리즈는 잠실 라이벌전이 유일했다. LG와 두산은 1차례의 연장을 포함해서 총 1,055구의 공을 주고 받았다. 이 중 두산은 561구를 던졌고, 그 중 15명의 불펜투수가 나와서 272구의 공을 던졌다. 대전과 잠실에서 벌어졌던 주중 혈전은 상대를 조금 바꾼 채 수원과 잠실에서 그대로 이어졌다. 글쎄, 팀 전력 상 한화가 자신있게 어디에 앞선다고 말할 처지는 아니지만, 팀 상태만을 보면 그나마 해볼 만한 상대가 두산이지 않았을까? 두산은 kt를 제외하고 한화보다 불펜투구수가 많은 유일한 팀이었다. 그리고 전날 연장승부를 벌이면서 7명의 불펜투수를 마운드에 올렸고, 이들이 책임진 공은 149구에 달했다. 만일 한화가 SK나 삼성처럼 불펜을 아껴가며 위닝 시리즈에 성공한 강팀을 주말에 만났다면 정말 나락으로 떨어지는 한 주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팀 분위기가 좋지 않은 팀을 만나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어차피 그런 팀을 만난다고 위닝을 기대하리라는 법은 없다. 웃통벗고 손톱과 발톱까지 다 써가며 뒹구는 개싸움을 벌일 때 같이 말려들 수 있는 팀을 만나는 편이 차라리 나았다. 기아-롯데로 이어지는 경기까지는 어떻게든 무리해가면서 버틸 힘이 있었지만, kt와의 경기를 거치며 이제는 뽑아낼 전력도 점차 한계에 다다랐다는 게 모두의 눈에 보이는 상황이다. 하필이면 이럴 때에 비도 안 오고 있다.


이것도 물론 오늘 이겼으니 하는 말이지만, 사실 한화로서는 부담스럽고 버겁고 힘든 상대이긴 하지만 그나마 두산이 상대인 편이 나았던 것이다. 누굴 만나도 어차피 부담스럽고 버겁고 힘들다면, 같이 힘이라도 빠져 있는 팀을 만나는 편이 낫다. 금요일 경기에 한정해서 말하자면 투수진 운영도 양 팀 모두 손을 뒤로 묶고 싸우는 듯한 기분이었을 것이다. 최대한, 최대한 불펜의 투입시기를 늦추는 것이 제1과제였다. 여기서는 마야가 이겼다. 배영수가 특별히 못 던졌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데 일단 이닝 대비 투구수가 많았고 정타가 자주 나왔다. 실점으로 이어진 건 투런 두 방이었지만, 그 외에도 잘 맞는 타구가 자주 나왔던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들이부을 불펜이 없었고, 최대한 불펜 투입 시점을 늦추려고 하는 게 눈에 보였다. 불행히도 그게 5회였지만 말이다.


임준섭과 송창식(!)을 들이붓고 2사 만루를 막아냈다. 그 다음 6회초 공격에서 이 경기 중 가장 이해할 수 없는 장면이 나왔다. 2사 2,3루에서 이용규를 고의4구로 내보낸 것이다. 잘은 모르지만 김태형 감독은 아마 성적이 좋기 때문에 두산 팬들에게 많은 비판을 받지는 않을 것 같다. 다른 팀에는 다른 팀 사정이 있기 마련이라 함부로 판단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이 장면 하나만큼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비록 이 장면으로 승패가 결정된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최소한 결정적 장면으로 꼽히기에는 무리가 없다.


일단 2사 2,3루가 되는 과정을 복기해보면, 선두타자 조인성이 약간은 운이 깃든 안타를 치고 출루했고, 번트를 준비하던 김회성이 가슴에 공을 맞고 출루해서 무사 1,2루가 되었다. 고동진이 번트를 성공시켜서 1사 2,3루가 되었는데, 그 다음 타자인 권용관을 삼진으로 돌려세우고 2사 2,3루를 만들었다. 1사 2,3루가 되는 과정은 한화에 유리했지만 권용관의 삼진으로 분위기를 다시 두산이 가져올 수 있어 보였다. 그리고 이 경기 3타수 3안타를 치던 이용규가 타석에 들어섰다. 유일하게 이 장면에서 나온 고의4구를 납득할 수 있는 가능성은 마야 자신이 승부를 원하지 않았다는 것 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2아웃이다. 이용규는 7할 타자가 아니다. 아무리 타자의 감이 좋더라도, 때리면 절반 이상의 확률로 아웃시킬 수 있다. 게다가 이용규가 무슨 한화 상대 스팀팩이었떤 마르테처럼 장타자도 아니다. 짧은 안타를 잘 잘라낸다면 조인성까지야 무리여도 최소한 2루주자 김회성까지는 홈 승부를 노려볼 수 있다. 그리고 거듭된 연투로 지쳐가는 송창식과 나머지 불펜들이 아웃카운트 12개를 잡아야 하는 한화 마운드 사정 상 약하지 않은 두산의 타선은 언제든 기회를 만들어낼 수 있다.


그리고 두산 벤치가 바보가 아닌 이상 3타수 3안타의 이용규를 피하면 다음에 한상훈일 거라는 계산을 하지는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굳이 이럴 때 쓰려고 남겨둔 것은 아니었겠지만, 한화에는 선발로 나선 그 누구보다도 믿음직한 좌/우 대타감이 벤치에 대기하고 있었다. 한상훈은 유격수다. 혹여라도 권용관 몸 상태가 유격수 수비를 보기 어려울 수 있었겠지만, 벤치에는 강경학도 있다. 한상훈을 빼고 대타를 내기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는 타순이었다. 이용규가 잠실에서 홈런 칠 가능성을 일단 제외한다면, 차라리 이용규와 승부하다가 안타를 맞는 편이 나았다. 그리고 이용규는 대충 65%의 확률로 스트라이크를 던지다 보면 아웃을 잡을 수 있는 타자였다. 무엇보다도 이 고의4구가 벤치의 지시였다면(아마 그럴 공산이 매우 큰데), 마야의 자존심도 건드릴 수 있는 일이다. 내가 투수라도 한 번 맞았던 타자라면 꼭 내 손으로 잡아서 돌려버리고 싶을 텐데, 2사까지 끌고 온 상황에서 내 공을 세 번 때려낸 타자를 거르라는 지시를 받고 상대 안 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을 가능성은 그다지 없어 보인다.


차라리 이용규 때 투수를 바꿨어야 했다. 아니면 권용관 때나.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불펜을 아껴야 한다는 게 지상과제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연타석 홈런을 친 김재환을 고의4구로 내보낸 건 김성근 감독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김성근은 그 일을 불펜투수에게 맡겼다. 선발투수가 두들겨 맞은 타자에게 승부를 피하라는 지시를 내릴 때 선발투수의 손으로 고의4구를 던지게 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고의4구를 던진 임준섭을 내리고 송창식을 올려서 최재훈을 잡았다. 이 승부가 정답이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결과론적으로 옹호받을 여지는 더 있을 뿐이다. 하지만 김태형 감독은 마야의 손으로 이용규를 피하게 했다. 자기 손으로 이전 타자를 잡아낸 선수라면 복수의 기회를 줘도 되지 않았을까.


이용규를 걸러내고 김경언이 타석에 들어섰다. 마야가 김경언의 기세에 딱히 눌렸을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확실히 김경언에게 공을 던지던 마야는 권용관에게 삼진을 잡던 마야가 아니었다. 2사 만루에서 마야는 스트라이크를 하나도 던지지 못하고 볼 네 개를 던졌다. 밀어내기로 한 점을 주고 난 뒤 정근우를 상대했다. 커브 타이밍을 노리던 정근우는 적시타를 때려냈고, 한화는 그 뒤로 두산에 역전당하지 않았다. 그리고 줄 점수 다 주고서야 선발을 내렸다.


언론에 따르면 김태형 감독은 전통적인 팀 컬러에 맞는 야구를 구사한다고 한다. 두산의 경기를 거의 못 봐서 언플인지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스몰볼과는 대척점에 있을 것이고 빠른 발과 펀치력을 두루 갖춘 타선이라면 확률 높은 득점싸움을 할 수 있다. 펀치력 있는 4번타자와 컨택트에 능하면서 중장거리포를 터뜨릴 수 있는 3번타자는 OB 시절부터 두산의 자랑이었고, 마지막 그 역할을 맡았던 김동주 이후 4번은 계보가 약간 흐려진 것 같지만 3번타자 하나는 정말 확실한 팀이다. 돌이켜보면 키스톤 콤비도 대체로 강력했고, 부침은 있었지만 빠른 발도 늘 갖추고 있던 팀이었다. 대체로 이런 장점들은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것 같다. 문제는 투수였는데, 고무공 마냥 한 자리가 해결되면 다른 자리가 문제고 해서 안정된 투수력을 바탕으로 시즌을 이끌어간 기억은 그리 많지 않다. 그렇게 보면 김태형 감독이 전통적인 팀 컬러의 장점은 최대한 살리고 있지만, 단점을 보완할 역량이 되는지는 다소 의문이다. 두산에는 정말 부러운 투수들이 많다. 서울이 양질의 팜인 건 주지의 사실이고, 뽑는 눈도 길러내는 수완도 좋은 것 같다. 하지만 가진 투수력을 최대한 사용하는 것 같지는 않다.


나는 마야를 권용관 타석이나 이용규 타석에서 반드시 내렸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오히려 마야가 이용규까지 다 상대하고, 자기 손으로 이닝을 마무리하는 편이 나았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권용관을 삼진으로 돌려세웠다면, 이용규와는 반드시 승부했어야 했다. 불펜을 쓰지 않고 막겠다는 결심이 굳었다면 고의4구로 어렵게 가지 말았어야 했고, 만일 타격감이 좋은 이용규를 내보내더라도 대타로 들어설 김경언, 김태균까지 포함해 그 다음 타자를 잡아낼 확실한 카드가 불펜에 있었다면 바로 올렸어야 했다. 이재우였을지, 함덕주였을지 누구였을지는 모른다. 어차피 필승조가 길게 던지기 힘든 상태였다면, 아예 올리지 않기로 머릿속 구상에서 제외한 게 아닌 바에야 그 때 원포인트로 한화 벤치에서 내밀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타자 한 명을 상대할 투수를 준비시키는 편이 나았다. 6회초 상황에서 내가 동의할 수 있는 판단의 순서는 다음과 같다.


1) 권용관을 삼진으로 잡아낸 마야와 이용규를 맞붙인다. 이용규에게 안타를 맞더라도 이닝을 마무리시킨다. 어떻게 맞는지는 주시할 필요가 있다.

2) 고동진의 번트를 처리한 1사 2,3루 시점에 가장 강력한 투수를 올려서 6회를 마무리시킨다.

3) 고의4구를 내주며 이용규와의 승부를 피했다면, 그 다음 타자는 마야가 아닌 필승조 불펜을 하나 올려서 상대한다. 원 포인트로.

4) 김경언에게 밀어내기를 내준 시점에서라도 바꾼다. 아니면 최소한 마운드에 올라가서 내야수들을 모으고 흐름을 끊는다.


물론 죄다 결과론이다. 하지만 이 차이가 작지는 않다. 마야는 사실상 자기 힘으로 무사 1,2루를 2사 2,3루로 바꿔놓았다. 그렇다면 2아웃 잡아놓고 2연속 출루를 허용한 배영수와는 다른 기준이 적용된다. 같은 2사 만루라 할지라도 5회말의 흐름과 6회초의 흐름은 분명히 달랐다. 김태형 감독이 시즌 전반을 돌아볼 때 유능한 감독일 수는 있겠지만, 적어도 6회초의 운영은 본헤드 급이었다. 그리고 한화로서는 천만 다행히도, 정근우가 적시타를 때려서 상대 벤치의 작전을 결과적으로도 본헤드로 만들어놓았다.


투수운영에 정답은 없다. 아마도 이기고 우승하는 것이 정답일 것이다. 포수 출신으로 유일하게 다른 야수들과는 반대 방향으로 경기를 보던 김태형 감독은 확실히 팀의 강점을 이해하고 발전시키는 데에는 유능한 감독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최소한 금요일 경기 하나만 놓고 봤을 때에는 불펜을 운영하는 방식과 투수의 심리와 씨름하는 방식에 있어서는 약간이나마 단점도 드러낸 것 같다. 원체 전력이 좋은 팀이니 이런 불안요소가 크게 터질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면역력이 약해진 때에 붙는 살얼음판 경기에서는 실제 크기 이상으로 경기에 영향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운이 좋게 이번에는 한화가 이득을 보았다. 아무렴 상대의 전력에 압살당하는 경기 보며 손가락 빠는 것보다는 이런 경기가 그래도 보는 맛이 있다. 일단은 이겼으니까.

by YNWAlone | 2015/05/09 02:43 | Eagles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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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rumic71 at 2015/05/10 15:27
전(前) 돡빠임다만 부러운 투수들이 많다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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